한봉녀 여사는 성심모자원을 설립하고 운영한 사회사업가로 6.25 전쟁 이후 남편인 우명득 목사와 함께 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여성과 아이들을 보살피는 데 헌신했다.
[주요 활동]
1. 성심모자원 설립 : 1950년대 초,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홀로된 여성과 아이들을 돕기 위해 남편 우명득 목사와 함께 성심모자원을 우명득 목사와 함께 세웠다.
2. 자립 지원 : 성심모자원은 단순한 보호 시설을 넘어, 모자가정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직업 교육과 자활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한봉녀 여사는 직접 바느질과 같은 기술을 가르치며 여성들이 사회로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3. 따뜻한 어머니 : 그녀는 성심모자원에 있는 모든 아이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돌보았으며, 전쟁의 상처를 가진 이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했다.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은 성심모자원이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이들의 삶을 회복시키는 터전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한봉녀 여사는 남편과 함께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데 평생을 바친 사회사업가로 평가받고 있다.
『거제도는 비운의 섬이었다. 한국전쟁 시절 거제 포로수용소에 갇힌 북한군·중국군·남한 측 민간인 억류자 등이 인권을 유린당하곤 했다. 그 무렵 거제도 일대는 암암리에 거대한 집창촌이 되기도 했다. 여자 포로들과 피난민들 중 미군을 상대로 매춘하는 여성들이 흔했다. 그들은 생계를 꾸려 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요양뉴스 기사 중 일부 인용).
한봉녀 여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업 교육과 자활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매춘을 단절시킨 큰 업적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