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이민훈 [칼럼니스트 이민훈] 아프다는 기록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삶… 발달장애인 의료 공백을 직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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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지학개론 작성일 26-10-02 13:33 조회 53 댓글 0본문
통계 수치가 보여주는 이상한 역설이 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때로는 숫자의 뒤편에 숨겨진 현실을 읽어내지 못할 때 엄청난 착시를 일으킨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최한 ‘발달장애인 의료 이용 실태 진단과 제도개선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된 통계가 딱 그러하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김승섭 교수팀의 분석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의 사망률은 비장애인에 비해 3.1배나 높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건강보험 청구 데이터상 만성 신체질환이나 정신질환, 암 등 중장년층 발달장애인의 질병 유병률은 비장애인보다 낮거나 연령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사망률은 3배나 높은데, 질병에 걸린 기록은 비장애인보다 적다니? 이 기이한 역설의 정체는 무엇일까.
김승섭 교수의 지적처럼, 이것은 발달장애인이 건강해서가 아니라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해 건강보험에 진료 기록조차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아프지 않은 통계’가 아니라 ‘의료 시스템에서 소외되고 잊혀진 통계’인 셈이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병원 문턱을 넘는 일은 매 순간이 전쟁이다. 치과 스케일링 하나를 받기 위해 전신마취를 감수해야 하고, 잇몸 출혈조차 제대로 조치받지 못해 합병증으로 이어지는 비극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증상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의 특성,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전용 병원의 부재,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이해 부족, 그리고 턱없이 짧은 진료 시간과 수가 체계 등 복합적인 장벽이 이들의 의료 접근성을 철저히 막아서고 있다.
결국 나이가 들고 부모나 보호자의 돌봄 여력이 떨어지는 중장년층이 되면, 발달장애인은 의료 체계 밖으로 완전히 튕겨 나간다. 적절한 시기에 진단받고 치료받았으면 살 수 있었을 질환들이 방치되고, 끝내 조용한 죽음으로 이어지는 ‘의료 방임’이 제도라는 이름 아래 방치되어 온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는 명확하다. 발달장애인을 거부하지 않고 진료할 수 있는 일차의료 기관을 대폭 늘려야 하고, 이를 위한 수가 구조 개편과 정당한 유인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의료진 역시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대하고 소통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수련 체계와 교육 경로가 신설되어야 한다. "전문가조차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현장 의료진의 고백은 개별 의사의 양심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교육·지원 시스템의 부재를 지목하고 있다.
한국피플퍼스트 박연지 집행위원의 지적처럼, 병원에 가기 어려운 상황을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문제로 돌려서는 안 된다. 의사가 환자의 눈을 맞추고, 쉬운 말로 치료 과정을 설명하며, 말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주는 ‘섬세한 결’을 갖춘 의료 체계는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권이자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다.
‘아픈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이들의 침묵에 이제 사회가 답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이 ‘그냥 한 사람의 환자’로서 언제든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병원, 나이 들어서도 내 몸의 이상을 마주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드는 것, 이것이 복지국가를 자처하는 대한민국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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