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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우드 홀

셔우드 홀(Sherwood Hall) 박사는 한국의 근대 의료 및 결핵 퇴치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며, 그의 부모님 또한 한국에서 헌신적인 의료 선교 활동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셔우드 홀 박사의 생애년도 및 활동]
우리나라 서울에서 출생1893년 (서울 출생)~1991년 (사망)한 최초의 서양인 아기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활동]
- 토론토 의과대학 졸업 후 의사가 되어 부모의 뜻을 이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 한국에서 결핵 퇴치 운동에 헌신했다.
- 특히 크리스마스 씰을 한국에 처음 도입하고 발행하여, 그 수익금으로 결핵 환자를 치료하고 요양원을 설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 1940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해주 구세병원 등에서 사역하며 한국 사람들을 돌보았다.
- 사망 후 1991년 아내와 함께 우리나라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되었다.



[셔우드 홀 박사의 가족 이야기]
셔우드 홀 박사의 가족은 3대에 걸쳐 한국에 봉사한 의료 선교사 가문이다.
1. 아버지 윌리엄 홀(William J. Hall) &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 Hall) - 1대
- 아버지 윌리엄 홀 (1860년~1894년) : 캐나다 출신 의료 선교사(의료사회복지사)로, 1891년 한국에 와서 활동했다.
- 청일전쟁 당시 평양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다가 전염병에 걸려 1894년 순직했다.
-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 (1865년~1951년) : 미국 출신 여성 의료 선교사(여성 의료사회복지사)로, 1890년 조선에 파견되어 여성 전문 병원인 보구녀관(현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 2대 책임자를 맡았다.
- 남편 사후에도 한국에 남아 여성 의료와 시각·청각 장애인 교육에 크게 공헌했다. 특히 한국 최초의 여의사인 박 에스더를 교육하고, 한국 최초의 한글 점자를 만들었다.
- 아들 셔우드 홀과 딸 이디스 마가렛 홀을 낳았으나, 딸 이디스 마가렛 홀은 어린 나이에 이질로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 1951년 미국에서 사망하며 유언에 따라 남편과 딸이 묻힌 한국에 안장되었다.

2. 셔우드 홀(Sherwood Hall) & 아내 매리언(Marian B. Hall) - 2대
- 셔우드 홀 박사 : 위에서 설명한 대로 부모님의 헌신을 이어받아 한국에서 의료 선교사(의료사회복지사)로 활동하며 결핵 퇴치에 평생을 바쳤다.
- 아내 매리언 B. 홀 : 그녀 또한 의료 선교 활동을 통해 셔우드 홀 박사의 사역을 도왔으며, 셔우드 홀 박사와 함께 한국에 묻혔다.

이 가족은 한국의 근대 의료 및 복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셔우드 홀 박사는 결핵 퇴치를 위한 크리스마스 씰의 창시자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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