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래는 일제강점기 시각장애인 교육에 헌신한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선구적인 인물로 그녀는 '조선의 헬렌 켈러'라고도 불린다.
[생애년도 및 배경]
1. 출생 연도 : 미상 (평양 출생)
2. 사망 연도 : 1918년 (유행성 열병으로 30대 초반에 사망 추정).
3. 배경
기독교인이었던 아버지 오석형의 딸로, 구한말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다. 당시 시각장애인이 교육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나, 평양에서 의료 선교 활동을 하던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여의사를 만나면서 삶이 바뀌었다.
[주요 업적]
1.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특수교육 수혜자
- 오봉래는 로제타 셔우드 홀에게서 점자 교육을 받은 한국 최초의 인물이다.
- 로제타 홀은 당시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던 시각장애인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미국 점자법을 바탕으로 "조선훈맹점자(朝鮮訓盲點字)"를 창안했는데, 오봉래가 이 점자로 교육을 받았다.
- 오봉래는 총명하고 배우려는 열정이 강해 1년 만에 점자를 해독하고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2.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특수교사
- 로제타 홀이 1898년에 설립한 평양여맹학교의 첫 번째 학생이자 1회 졸업생이 되었다.
- 졸업 후 맹인 여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시각장애인 특수교사가 되어 후학 양성에 힘썼다.
오봉래의 삶은 조선 시대 시각장애인에게 교육의 문이 열릴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이며, 그녀의 교육 활동은 한국 근대 특수교육의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오봉래와 박두성의 관계]
1. 오봉래와 '조선훈맹점자' (선구적 역할)
- 오봉래는 미국인 의료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에게서 한국 최초로 점자를 배운 시각장애인이다.
- 점자 체계 : 로제타 홀은 당시 조선에는 점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배운 뉴욕식 점자를 바탕으로 '조선훈맹점자(朝鮮訓盲點字)'를 만들었고 이 점자는 4점식으로, 한글의 표기 원리(특히 초성과 종성)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 오봉래의 역할 : 오봉래는 이 '조선훈맹점자'를 습득한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교육 수혜자이자 교사로서, 초기 시각장애인 교육의 물꼬를 트는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2. 박두성과 '훈맹정음' (완성 및 계승)
- 박두성 선생님(1888~1963)은 1913년부터 조선총독부 제생원 맹아부 교사로 일하면서, 당시 사용되던 일본 점자나 로제타 홀의 '조선훈맹점자'가 한글을 표기하는 데 부족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 점자 체계 : 박두성 선생님은 제자들과 함께 비밀리에 연구하여, 한글의 제자 원리에 맞고 배우기 쉬운 6점식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訓盲正音)'을 1926년 11월 4일에 발표했다. 이 훈맹정음은 현재까지 사용되는 한국 점자의 근간이다.
박두성 선생님은 로제타 홀 여사와 오봉래가 시도했던 초기 점자 연구와 교육 활동을 계승하여, 마침내 한글의 특성에 최적화된 독자적인 점자를 완성함으로써 한국 시각장애인 교육의 '세종대왕'이 되었다.
오봉래는 로제타 홀이 만든 최초의 시도였던 '조선훈맹점자'를 통해 교육받은 1세대 선구자이며, 박두성 선생님은 그 후속 연구를 통해 미흡했던 점자 체계를 보완하고 한글의 원리에 맞는 '훈맹정음'을 완성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두 분은 한국 점자 발달사에서 시간적·역사적으로 중요한 연결고리를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