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E. 리(Robert E. Lee, 1807~1870) 장군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군(Confederate States Army)을 이끈 최고의 명장이자, 전쟁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1. 생애 초기 및 군 경력
버지니아주 출신으로, 미국 독립전쟁 영웅인 헨리 리 3세의 아들로 그는 버지니아에 대한 강한 애착과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1829년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하며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보였고, 이후 공병 장교로 복무했다.
- 미국-멕시코 전쟁 : 이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명성을 쌓았으며, 남북전쟁 직전에는 미합중국(북군)의 대령 계급에 있었다.
- 북군 총사령관 제의 거부 : 남북전쟁 발발 직전, 링컨 대통령은 윈필드 스콧 총사령관의 추천을 받아 리에게 북군(합중국 육군)의 사령관 직을 제안했다. 그러나 리는 고향인 버지니아주가 연방을 탈퇴하자, 개인적인 노예제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주에 대한 충성심을 이유로 북군의 제의를 거부하고 버지니아로 돌아와 남군에 합류했다.
2. 남북전쟁에서의 역할 및 업적
1862년 북버지니아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후, 수적으로나 물적으로 우위에 있던 북군을 상대로 여러 차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공격적이고 대담한 전술은 북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 주요 승리 : 제2차 불 런 전투와 프레더릭스버그 전투, 챈슬러스빌 전투 등 주요 전투에서 뛰어난 지휘력을 발휘하여 남군의 사기를 높이고 전쟁을 장기화시켰다.
- 게티즈버그 전투의 패배 : 1863년 리 장군은 북부 영토로 대규모 공세를 감행했으나,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며 전세가 북군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패배는 남군의 재기 불능을 초래한 중대한 분수령이었다.
- 남군 총사령관 : 전쟁 말기인 1865년, 리는 남부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나, 이미 남군이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 항복 : 북군의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과의 치열한 공방 끝에 1865년 4월 9일, 버지니아주 애퍼매턱스 코트하우스에서 항복하며 4년간의 남북전쟁을 종식시켰다. 리는 더 이상의 무의미한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항복을 결정했다.
3. 전후 생활과 평가
전쟁이 끝난 후, 리는 반역죄로 기소되었으나 사면되었고, 워싱턴 대학교(현 워싱턴 앤드 리 대학교)의 총장으로 부임하여 남은 생애를 교육에 헌신했다. 그는 남북 간의 화해와 재건을 촉구하는 데 기여했다.
- 군사적 평가 : 군사 전략가로서의 능력은 당대와 후대에 걸쳐 높이 평가받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휘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 역사적 논란 : 그러나 그는 노예제 자체에 도덕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남부의 가치와 이상을 옹호하고 인종차별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에, 현대에 와서는 노예제 수호를 위해 싸운 인물로서 그의 동상과 기념물은 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