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노동 운동(Ten Hours Movement)은 19세기 초·중반 영국 산업혁명기, 공장 자본가들의 무자비한 착취에 맞서 “아동과 여성 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을 최대 10시간으로 제한하라”고 요구했던 역사적인 노동 인권 운동입니다.
당시 영국의 공장은 자본주의의 탐욕이 극에 달해, 6~7세밖에 안 된 어린아이들과 여성들이 하루 14~16시간씩 채찍질을 당하며 일하던 '합법적 노예 수용소'였습니다. 이를 바꾸기 위해 의원, 종교인, 노동자들이 신분을 초월해 뭉쳤고, 약 20년에 걸친 치열한 투쟁 끝에 결실을 맺었습니다.
1. 운동의 발단
1830년, 사회개혁가 리처드 오스트러가 신문에 《요크셔의 노예제》라는 격정적인 편지를 기고하면서 운동의 불씨가 당겨졌습니다.
영국이 막대한 돈을 들여 아프리카 흑인 노예제는 폐지했으면서, 정작 자국 공장의 아이들은 노예보다 더 참혹하게 굴리고 있다는 고발이었습니다.
이후 영국 북부 산업지대를 중심으로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합세하여 ‘10시간 위원회(Ten Hours Committees)’가 조직되었고, 전국적인 대중 시위와 서명 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2. 3대 거인의 하모니
이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살펴본 세 명의 영웅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완벽한 역할을 해냈기 때문입니다 (외곽 선동 ➔ 증거 수집 ➔ 입법).
[리처드 오스트러] ➔ 여론 폭발 및 거리 투쟁 (거리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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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새들러] ➔ 《새들러 보고서》 발간, 아동 착취 데이터 증명 (지성의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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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츠버리 백작] ➔ 새들러의 바통을 이어받아 의회 내 입법 투쟁 (입법의 검)
오스트러가 거리에서 "아이들을 구하자!"며 수만 명의 대중을 모으면, 새들러는 의회 청문회를 열어 공장 아이들의 팔다리가 짤리고 뼈가 휘는 참상을 담은 《새들러 보고서(1832)》를 만들어 자본가들의 입을 막았고, 새들러가 낙선하자 뒤를 이은 7대 샤프츠버리 백작(애슐리 쿠퍼)이 의회 안에서 끈질기게 법안을 밀어붙였습니다.
3. 마침내 통과된 '10시간 공장법'
자본가들은 "노동시간을 줄이면 영국 산업이 망한다", "아이들이 일찍 퇴근하면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끈질긴 투쟁 끝에 1847년, 마침내 여성과 18세 미만 청소년의 노동시간을 하루 최대 10시간(토요일은 8시간, 주당 총 58시간)으로 제한하는 ‘10시간 법(Ten Hours Act)’이 의회를 통과하게 됩니다.
4. 10시간 노동 운동이 남긴 역사적 의의
1) 자본에 대한 국가 규제의 시작
그 전까지는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계약은 당사자(자본가와 노동자)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는 방임주의가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을 통해 "아무리 자유시장이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개입해 강제로 노동시간을 제한할 수 있다"는 거대한 원칙이 세워졌습니다.
2) 성인 남성 노동자의 노동시간도 연쇄 단축
이 법은 표면적으로 '여성과 청소년'만 대상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공장은 여성·청소년이 퇴근하면 남성 노동자 혼자서는 기계를 돌릴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결국 이 법 덕분에 성인 남성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도 자연스럽게 10시간으로 줄어드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3) 현대 노동법과 8시간 노동제의 징검다리
10시간 노동 운동의 성공은 훗날 전 세계 노동 운동의 슬로건인 "하루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잠"으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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