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고
사회복지 인물, 이론, 정책, 용어사전, 단체, QnA에 대해 궁금하다면 웰페어치 포털(Welfarechi)
칼럼니스트 이민훈 [칼럼니스트 이민훈] 지역사회를 읽는 렌즈와 새로 그리는 지도
페이지 정보

본문
지역사회복지론의 이론적 계보는 본래 지역사회가 어떠한 구조로 작동하는가를 설명하는 ‘사회학적 기초 이론’과, 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다루는 ‘실천 모델’이라는 두 축으로 발전해 왔다. 구조기능론, 갈등이론, 사회교환이론, 생태체계이론과 같은 기초 이론들이 지역사회의 현상을 다각도로 관찰하는 망원경의 렌즈 역할을 했다면, 로스만(Jack Rothman)으로 대표되는 실천 모델들은 그 렌즈를 통해 포착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제시해 왔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지역복지 현장 역시 이러한 전통적 이론과 모델의 영향력 아래에서 작동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지역사회복지 이론은 공공과 민간의 복지 전달체계 전반에 깊숙이 착근되어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이나 복지관의 욕구 조사는 사회계획 모델과 체계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마을공동체 만들기나 주민참여예산제 등은 지역사회개발 모델과 임파워먼트 이론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또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나 주거권 옹호 활동처럼 권리 쟁취를 위한 시민 사회의 목소리에는 갈등이론과 사회행동 모델의 유산이 짙게 남아 있다. 이처럼 기존 이론들은 복잡한 사회적 위험 속에서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정책적·실천적 개입의 당위성을 제공하는 유용한 틀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급격한 사회 변화는 기존 이론 체계의 한계를 드러내며 새로운 지역사회 모델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첫째, 초고령화와 초저출생이라는 인구구조의 지각변동이다. 전통적인 지역사회복지론이 전제했던 ‘공간적·지리적 이웃’의 기능은 약화되었고, 돌봄의 주체와 대상이 동시에 고령화되면서 기존의 공급자 중심 계획이나 단순한 주민 자조 수준을 넘어서는 정교한 통합돌봄(Community Care) 체계가 절실해졌다.
둘째, 디지털 전환과 가상 지역사회의 출현이다. 현대인의 삶의 터전은 더 이상 물리적 행정구역에만 갇혀 있지 않다. 온라인 플랫폼과 SNS를 기반으로 한 비대면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고립과 디지털 소외 계층이 발생하고 있다. 공간적 접근성을 기본 전제로 삼았던 로스만 시대의 모델만으로는 비가시적인 복지 사각지대와 디지털 격차 문제를 완벽히 포섭하기 어렵다.
셋째, 기후위기와 사회적 재난의 일상화다. 폭염, 폭우, 감염병 등 기후 변동으로 인한 피해는 지역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이제 지역사회복지는 단순히 소득 보장이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의 환경적·사회적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증진하는 생태적 복지 모델로 확장되어야 한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지역사회 모델은 과거의 이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이론적 렌즈를 다변화하고 발전시키는 일이다. 지리적 경계를 넘어선 ‘디지털-물리 복합 공간’을 다룰 수 있는 확장성, 공공과 민간을 넘어 주민과 기업, 기술이 결합하는 ‘다주체 협력 플랫폼’ 체계, 그리고 기후 위험과 인구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생태적 회복탄력성 모델’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론은 시대의 질문에 답하는 이정표다. 전통적 복지 이론이 제공한 든든한 토대 위에서, 변화된 시대상과 위험 구조를 정밀하게 담아내는 새로운 지역사회복지 모델을 정립할 때 비로소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커뮤니티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