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그레이엄 섬너(William Graham Sumner, 1840~1910)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 예일대학교 교수입니다.
그는 미국의 학문적 기반을 닦은 사회학의 개척자 중 한 명이지만, '사회진화론'과 '적자생존 법칙'을 미국 사회에 가장 적극적이고 정교하게 퍼뜨린 사상가로 악명이 높기도 합니다. 영국의 허버트 스펜서가 사회진화론의 시초라면, 섬너는 이를 미국식 자본주의에 맞춤형으로 이식한 인물입니다.
1. 미국식 사회진화론의 완성
섬너는 인간 사회의 불평등을 아주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현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백만장자는 자연선택의 결과물'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부자들은 사회적 경쟁에서 승리한 '가장 적합한 자(적자)'들이며, 그들이 부를 축적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진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과정이라고 찬양했습니다.
2. 국가 개입과 복지 제도의 극렬한 반대
섬너의 철학은 철저한 자유방임주의 (Laissez-faire)였습니다.
그는 국가가 가난한 사람이나 약자를 돕기 위해 복지 정책을 펴는 것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위험한 짓'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면 사회의 평균적인 질(경쟁력)이 떨어지고, 결국 부적격자들이 넘쳐나 사회가 퇴화할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이는 '잔여적 모형'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자,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의 사상적 배경이 됩니다.
3. 민습 (Folkways)과 원습 (Mores) 개념의 창시
사회학자로서 섬너가 남긴 중요한 학문적 업적 중 하나는 사회 규범을 분류한 것입니다.
사회의 관습을 단순한 생활 양식인 '민습(Folkways)'과, 그중에서 도덕적·법적 강제성을 띠고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원습(Mores)'으로 구분했습니다.
또한, 자기가 속한 집단만 우월하다고 믿고 다른 집단을 배척하는 심리를 뜻하는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라는 용어를 처음 정립하기도 했습니다.
['잊혀진 사람(The Forgotten Man)' 개념의 왜곡]
섬너는 '잊혀진 사람'이라는 유명한 에세이를 썼는데, 그가 말한 '잊혀진 사람'은 현대 우리가 생각하는 소외된 약자가 아니었습니다.
"A와 B(정치인과 사회개혁가)가 모여서, C(가난한 사람)를 돕기 위해 D에게 돈을 걷기로 법을 만든다. 이때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일하며 세금을 내야 하는 D가 바로 '잊혀진 사람'이다."
그는 국가가 복지 정책을 펼칠 때 정작 가장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는 성실한 중산층(D)이 피해를 본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논리는 세금을 줄이고 고소득층과 기업의 규제를 풀어주어야 한다는 미국 보수주의 및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단골 레토릭으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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