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 1852~1883)는 세계 최초의 복지관, ‘토인비 홀(Toynbee Hall)’의 이름 주인이자 31세에 불꽃처럼 살다 간 경제학자입니다.
1. 옥스퍼드의 천재 엘리트, 빈민가로 향하다
아놀드 토인비는 영국 최고의 명문인 옥스퍼드 대학교 발리올 칼리지의 교수이자 촉망받는 젊은 경제사학자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지만, 그 이면에는 하루 16시간씩 일하면서도 굶어 죽는 노동자들과 지독한 빈민가가 공존하는 사회적 모순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엘리트 학자들은 책상 앞에 앉아 '가난한 건 게을러서 그렇다'며 이론만 늘어놓았습니다. 하지만 토인비는 달랐습니다.
"지식을 가진 우리가 이 비극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는 런던에서 가장 위험하고 더러운 빈민가였던 이스트엔드(Whitechapel 지역)를 직접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무료로 경제학 강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의 부가 어떻게 분배되어야 하는지, 노동자의 권리는 무엇인지'를 상류층의 언어가 아닌 그들의 언어로 쉽게 풀어 설명해 주었습니다.
2. 사무엘 바네트 목사와의 운명적 만남
이 빈민가 현장에서 토인비는 그 지역 성 유다 교회의 목사였던 사무엘 바네트를 만나게 됩니다.
바네트 목사는 단순히 물질을 나눠주는 자선은 빈민을 구제할 수 없으며, 상류층 지식인들이 이들과 '이웃'이 되어 살아가며 문화와 교육을 나누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젊은 학자 토인비의 뜨거운 열정과 바네트 목사의 대담한 아이디어가 만나면서, 두 사람은 옥스퍼드 대학의 다른 청년들을 빈민가로 끌어들이는 사회 운동을 본격적으로 도모하게 됩니다.
불행히도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아주 허약한 편이었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빈민 구제와 학문 연구에 영혼을 갈아 넣던 토인비는 결국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1883년, 겨우 31세라는 너무나 아까운 나이에 뇌막염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3. 토인비 홀(Toynbee Hall)의 탄생 (1884년)
토인비가 세상을 떠난 바로 다음 해인 1884년, 사무엘 바네트 목사와 옥스퍼드 대학의 동료들은 마침내 그들이 꿈꾸던 '지식인들이 상주하는 빈민가 복지관'을 완공하게 됩니다. 바네트 목사는 이 건물의 이름을 지을 때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친구 아놀드 토인비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을 불태웠던 그의 정신은 이 건물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어야 한다."
이 건물이 바로 세계 최초의 인보관인 ‘토인비 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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