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눈에 보이는 성장에 매몰될 때, 정작 가장 단단하게 붙잡아야 할 바닥을 놓치곤 한다. 최근 정치권과 행정부의 무관심 속에 발달장애인 관련 입법과 정책적 진전이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여기에 더해 복지 현장의 최전선인 발달장애인복지시설의 예산마저 삭감되거나 동결되는 추세다. 이는 단순한 예산 조정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도덕성과 인권 감수성이 무너지고 있음을 알리는 위험한 신호다.
1. 입법의 지연, 그리고 방치되는 기본권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현실의 변화는 빛의 속도로 빨라졌으나 법과 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급변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환경과 현실적인 수요를 반영한 후속 입법과 개정 작업은 번번이 정쟁의 밀려나거나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법은 단순한 문장의 나열이 아니라 국가가 약속하는 '안전선'이다. 법 제정과 개정이 지연될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전가된다. 국가가 제도의 공백을 방치하는 사이, 가족들은 '각자도생'이라는 명목 아래 극단적인 고립과 절망으로 내몰리고 있다. 비극적인 가족 참사가 반복해서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제도는 여전히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반복 중이다.
2. 예산 감축, 복지 현장을 향한 보이지 않는 폭력
입법의 부재보다 더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위협은 바로 '예산의 칼바람'이다. 효율성과 재정 건전성이라는 명목 아래 발달장애인복지시설의 예산이 감축되는 것은 현장을 향한 보이지 않는 폭력과 다름없다.
발달장애인복지시설은 단순한 돌봄 공간이 아니다. 이들은 사회적 자립이 어려운 이들이 비로소 사회의 구성원으로 숨 쉬고, 가족들이 최소한의 경제활동과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유일한 보루다. 이곳의 예산이 깎인다는 것은 곧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 전문 인력의 이탈, 그리고 수용 인원의 축소로 이어진다. 결국 갈 곳 잃은 발달장애인들은 다시 가정이라는 밀폐된 공간으로 격리되고, 이는 곧 가족 전체의 파탄으로 이어진다. 비용을 아끼려다 더 큰 사회적 비용과 돌이킬 수 없는 인권 침해를 초래하는 어리석은 선택인 셈이다.
3. 복지는 시혜가 아닌 국가의 책무이자 사회적 투자
일각에서는 복지 예산을 '소모성 비용'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착오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과 체계적인 인프라 구축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문명화된 국가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헌법적 책무이자 가장 확실한 사회적 투자다.
한 사회의 품격은 가장 약한 사람들이 어떻게 보호받고 존중받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발달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법적·재정적 토대를 공고히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생존과 직결된 과제다.
지금이라도 멈춰 선 입법 시계를 다시 돌리고, 삭감된 복지 예산을 원상 복구해야 한다. 예산을 줄이는 정치는 쉬울지 몰라도, 한 번 무너진 인간 존엄의 탑을 다시 쌓는 데는 엄청난 대가가 따른다. 국회와 정부는 더 이상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실효성 있는 법안 통과와 과감한 예산 확충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증명해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