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기고] 한국 장애인복지, 신체기능에서 사회…
한국의 장애인복지는 지난 수십 년간 눈부신 변화를 겪어왔다. 과거에는 장애인을 주로 신체적·정신적 기능의 결핍이나 부족으로 정의하고, 이를 치료하거나 보호하는 차원에서 정책을 설계했다.보장구 지원, 요양·재활 서비스, 장애인 연금과 같은 제도들은 모두 개인의 결손을 보완하고,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노력은 분명 장애인의 삶을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기반이 되어왔다. 그러나 사회학적 시각에서 볼 때, 장애인의 삶은 단순히 신체기능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장애가 개인의 능력 문제로 인식되는 한 사회는 여전히 장애인을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제한적으로 이해하고 정책과 제도의 근본적 변화를 어렵게 만든다.기능 중심 접근의 성과와 한계신체기능 중심의 접근은 여러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뇌졸중, 척수손상, 선천성 지체장애 등으로 기능적 제약이 큰 장애인들에게는 맞춤형 재활 프로그램, 활동지원 서비스, 산정특례제도 등이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실질적 도움을 주었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한국은 재활 병원 확충, 보조기기 보급 확대, 장애인 연금 도입 등 제도적 발전을 통해 기초적인 생활 여건을 크게 개선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장애인을 “치료·보호 대상”으로만 한정하는 경향이 있으며 사회적 참여나 권리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뚜렷하다. 한국의 장애인 고용률은 OECD 평균에 비해 여전히 낮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15년이 지났음에도 장애인 접근권, 교육권, 정치 참여와 같은 사회적 권리는 충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즉 신체기능을 보완하는 데 초점을 둔 복지가 사회적 차별과 장벽을 해소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것이다.국제사회의 흐름: 사회적 모델로의 전환사회적 관점의 장애인복지란 무엇인가. 국제사회에서는 2006년 UN 장애인권리협약(CRPD)을 기점으로, 장애를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적 문제로 전환하는 ‘사회적 모델’을 강조해왔다.이 모델에 따르면 장애는 개인의 신체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환경적 장벽 때문에 발생한다. 휠체어 사용자가 길을 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신체 때문이 아니라 턱과 계단으로 가득한 사회적 환경 때문이다.이 관점은 여러 나라에서 제도적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영국은 1970년대부터 사회적 모델을 정책에 적극 반영해 공공건물 접근성 의무화, 장애인 고용평등법 등을 도입했다.스웨덴과 노르웨이는 복지를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 ‘참여 보장’으로 이해하며 공공 교통·교육·문화 전반에서 장애인 접근성을 전제로 정책을 설계한다. 캐나다 역시 ‘장애인권리장전’을 통해 장애를 사회적 차별로 정의하고, 고용·교육·정보 접근권을 국가의 의무로 명시했다.일본의 경우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은 2000년대 이후 ‘장애인 기본법’을 개정하며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꿨다. 2013년에는 ‘장애인차별해소법’을 제정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민간 기업에도 장애인 차별금지 의무를 부과했다. 이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사회 구조 전체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이처럼 선진국은 신체기능의 보완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장벽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왔다. 한국 역시 2018년 이후 일부 법과 정책에서 이 관점을 반영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여전히 제한적이다. 공공건물 접근성 개선,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장애인 평생교육 확대 등이 그 예이지만, 정책 실현력과 예산 배분, 사회적 인식 개선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한국이 사회적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한국 사회가 신체 기능 중심에서 벗어나 사회적 관점으로 전환하기 어려운 이유는 다층적이다.첫째, 문화적 요인이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능력주의’와 ‘자립’에 높은 가치를 두며 장애인을 ‘지원이 필요한 약자’로 인식해왔다. 경쟁과 성과 중심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장애를 ‘극복해야 할 개인의 문제’로 보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둘째, 제도적 요인이다. 장애등급제, 급여 산정 기준, 재활·요양 중심 서비스 체계 등은 여전히 개인의 신체적 결손에 기반하여 설계되어 있다. 등급제는 폐지되었지만, 실제 서비스 제공 체계는 여전히 신체적 기능 제한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셋째, 재원과 정책 수용 문제다. 사회적 모델을 구현하려면 공공건물, 교통, 교육, 일자리 등 사회 구조 전반을 장애 친화적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이는 막대한 예산과 제도적 조율을 필요로 한다. 단기적 비용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장기적 효과를 간과한 채 개혁이 지연되는 것이다.전환의 필요성: 권리, 비용, 정의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으로의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제다.무엇보다도 이는 장애인의 권리 보장과 사회적 참여 확대를 위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복지 제도가 재활과 보호에 머물러왔다면 이제는 장애인이 교육, 고용, 문화, 정치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동등한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시혜적 지원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둘째, 사회적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불가피하다. 장애인을 보호와 돌봄의 대상으로만 머물게 할 경우 장기적으로 요양·재활 비용은 늘어나지만, 사회적 참여 기회를 확대하면 경제적 자립과 생산적 활동으로 사회 전체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유럽의 여러 연구는 장애인의 고용 참여 확대가 복지 지출을 줄이는 동시에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는 점을 입증했다.셋째, 사회 정의와 평등 실현이다. 장애를 개인의 결함이나 문제로만 한정하는 시각은 인권적 기준에서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존엄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정의로운 사회가 지향해야 할 기본 가치이며, 사회적 관점의 전환은 그 가치 실현의 출발점이다.구체적 전환 방안그렇다면 전환을 위해 필요한 접근은 무엇일까.첫째, 정책 설계 단계에서 사회적 맥락을 반영해야 한다. 장애인 교통권 확대, 온라인·오프라인 교육 접근성 강화, 직장 내 차별 예방 프로그램 등은 사회적 장벽을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둘째,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학교, 미디어,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장애를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도록 교육과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영국의 경우 초등 교육부터 장애 이해 교육을 의무화해 사회적 편견을 줄이고 있다.셋째, 법·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장애등급제의 실질적 폐지, 평생교육권 확대, 공공건물 접근성 강화, 장애인 고용 목표제 강화 등은 신체적 기준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적 참여를 중심으로 한 제도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 미국의 ‘장애인법(ADA)’처럼 강력한 차별금지와 접근성 확보 법률이 한국에도 필요하다.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한국의 장애인복지 제도와 정책은 진화 중이다. 2019년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2022년 장애인 평생교육법 제정, 장애인 권리옹호센터 활성화 등은 사회적 관점을 반영하려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실질적 변화를 위해서는 제도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 전반의 구조적 장벽과 문화적 편견을 동시에 해체해야 한다.영국, 캐나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사회적 모델로의 전환은 단순한 복지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조적 개혁을 요구한다. 한국 역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장애인복지의 미래는 개인의 결손을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히 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달려 있다.결국 한국이 신체 기능 중심의 장애인복지에서 사회적 관점으로 전환하는 시점은 단순히 법 제정이나 제도 개편이 아니라, 장애인이 권리와 책임을 동등하게 행사하며 사회적 장벽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이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의지와 문화적 성숙도의 문제다. 우리는 이미 물리적·경제적 지원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제는 인식, 제도, 사회 구조 전반에서 장애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 장애인복지의 진정한 성숙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이 글은 김양희 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 연락을 주시면 안내해 드립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